페미니즘의 이해:★잔다르크의 진실★[교-15]

페미니즘의 이해:★잔다르크의 진실★[교-15]

남성연대 0 71

要約 :본문 내용은 국내외 한번도 발표된적 없는 내용이며 남성연대동지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만 요약한다. 본문내용에 대한 과실은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며 본문의 내용만 제대로 소화한다면

현재 한국에서 이름깨나 있다는 페미니스트들과 맞상대해도 무방할만한 실력을 갖추게 될것이라 확신한다.

동지들의 신속한 이해와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업데이트할것이다.  

본문 내용을 위한  참고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플라톤[국가론].헤겔[변증법].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프로이트[저서 전부].라캉[저서 전부].융[아니마.아니무스.페르조나론].오토바이닝어[성.성욕에 대한논문].푸르동[무정부주의.철학의빈곤].사르트르[실존주의].헨리 데이빗 소로우[아나키즘].마르크스[저서.논문 전부].엥겔스[가족.사적소유.국가의 기원].아우구스트베벨[여성과 사회주의].바호펜[모권론]

그리고 2008년 10월까지 해외에서 발간된 페미니즘에 대한 서적.논문 전부를 참고하였다.

 

[교-14]에 이어 페미들이 페미니즘의 제1물결이라 일컫는 192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에서 정의하는 원류적인 인물들과

그 역사적 배경을 검토하고 재해석한 뒤에 현대 페미니즘의 정의와 문제점들을 짚어 가겠다.

[교-14]에 이은 '잔다르크'에 대한 페미니즘의 입장은 여전사女戰士, 그러니까 남성들의 영역인 전투능력에서 남성성을

초월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 이다.

'잔다르크'는 결코 페미니즘적 인물이 될수없으며 그 공적 또한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잔다르크는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神의 계시를 받고 샤를황태자를 만나러 간다.

여기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신神의 계시를 받고 실천적 수행을 시작했다는것부터 페미니즘과는 배치背馳된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해 대치하며[받아들이지않고 대응하며]남성주도적인 창조론 역시 재해석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이념자체가 반종교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톨릭에서 말하는 '무염시태'는 성모마리아를 제외한 이들은,여성들은 원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런 이유로 종교,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는 페미니즘과 그 이념적 측면에서도 심각하게 背馳된다.

 

둘째 '잔다르크'는 신神의 계시를 받아 샤를황태자의 왕위계승을 돕고 당시 프랑스 북반부를 점령하고 영국에 협조하고 있던

'부르고뉴파'에 대항한다.

즉 왕조를 수호하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는 수행성을 보인다.

이것은 바로 민족주의이며 국가주의이다.

만약 '잔다르크'가 신神의 계시를 받아 그 실천적 수행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돕고 계도하는데 앞장섰다면 억지로라도

페미니즘의 상징이 될수있었다.

그러나 국가주의야말로 보수 우파이데올로기.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개인의 이익보다는 사회공동체의 발전을 우선하는 이념이 바로 국가주의.

페미니즘의 타자他者인 남성과 남성의 공적형태인 가부장제 더 나아가 민족 국가공동체의 개념은 페미니즘이 타도하고 배척

해야할 대상이다.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명제가 페미니즘의 탈국가 탈민족의 이데올로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것이다.

그런데 민족과 국가[왕조]를 위해 싸웠던 '잔다르크'가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이 될수있는가..."

 

셋째 '잔다르크'의 공적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잔다르크'가 치른[?] 전투는 고작 오를레앙에서의 1년 남짓이다.

실제 '잔다르크'가 전투에 임해서 적敵을 살상하거나 적진을 선두에서 돌파한다거나 하는 전투행위를 하지않았다는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녀가 했던 일이라곤 오를레앙의 프랑스병사들에게 심리적인 사기진작을 했을뿐.

이런 '잔다르크'의 행적은 이미 1300여년부터 1800여년까지 500여년동안 유럽에서는 시위.봉기등이 있을 경우 여성들이

먼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남성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과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통적 관습이 있었다는것으로,

'잔다르크'가 오를레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수있다.[미셸파레著]

이것이 레이트퍼스트의 유래가 되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참조 http://cafe.naver.com/openwar/2054

즉 여성들이 나서서 남성들을 자극하여 선동을 하고 분위기를 과열시켜놓으면 그 뒤는 남성들이 모든 전투를 수행하는

500여년을 이어온 유럽의 관습적 전통.

'잔다르크'의 오를레앙에서의 전투 역시 그 역할이었다고 판단한다.

'여자가 나서는데 남자들이 뭐하는가''레이디 퍼스트,여자가 앞장서면 남자들은 따라올것이다' 이것이었다.

무기와 화력이 엇비슷하고 전술과 개개인의 능력차이까지 별다른 우열을 가늠할수없던 중세 전투에서 신神의 계시로 무장한

여성이 진영을 독려했을때는 집단최면과 같은 효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을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정도다.

'잔다르크'의 역할은...

그리고 이 잔다르크를 페미니스트들보다 먼저 국가주의적 영웅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나폴레옹이다.

민족국가주의를 위한 침략,정복의 당위성을 위한 나폴레옹의 광기가 '잔다르크'를 영웅으로 미화시켰다.

'잔다르크'는 나폴레옹에게 국가를 위한 표상으로서 가장 훌륭한 모델이었다.

 

넷째 공식적으로 사용할지 말지 결정못한 부분이다.

'잔다르크'는 처녀였다.

엄격한 처녀성 테스트를 통과했고 마지막 화형당하는 상황에서도 '잔다르크'가 처녀였기에 집행자들이 사형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있을 정도다.

자진해서 처녀막 절개운동을 벌이자는 페미들에게 순수한 성처녀였던 '잔다르크'가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이

가당키나 한말인가.

잔다르크는 프랑스 입장에서 민족국가주의적 영웅이지 결코 페미니즘의 상징 인물이 될수는 없다.

 

다음 [교-16]에서 역시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로 묘사되는 여성들을 다뤄보면서 현대까지 넘어와서 페미니즘의 변형된

정의까지 내려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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